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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평화적 전환기를 듣다

정치적 투옥과 만성적 기아의 위협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많은 주민들이 북한을 떠난다. 이들 중 상당수가 베트남이나 중국을 북한의 성공적인 모델로 보고 있지만, 오세혁 씨는 몽골의 잔인하고 억압적인 공산주의 정권에서 자유롭고 번영하는 민주주의로의 변화를 이용하여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오세혁 씨는 1999년에 북한을 떠났다. 그 이후로 동료 북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전념해 왔다. 전환기 정의 위킹그룹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연구원인 세혁 씨는 최근 몽골의 전환 과정 경험을 정리한 IRI의 COMET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15년 이후, COMET 프로그램은 몽골 지도자들이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변화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도왔다. 세혁 씨는 이번 교환프로그램을 통해 배운 기억들과 북한에서 본인의 경험을 반추해 아래 글에서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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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한국 속담이 있다. 이번 몽골 교환프로그램에 대한 나의 인상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사실 한국인에게든 탈북자에게든 몽골의 전환기 경험은 그리 익숙하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중국, 러시아, 동유럽, 독일, 심지어 쿠바 같은 나라들의 경험은 학회나 토론장에서 여러 번 들어봤어도 몽골에 대해 들어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미리 받은 연수여행 자료를 읽어보면서 단지 구 러시아식의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평화적인 전환을 이룩했다는 하나로 이번 몽골 연수에 대한 나의 기대와 궁금증은 충분히 부풀어 있었다.

이번 연수프로그램 동안 몽골의 민주주의적 정치 방법과 시민사회 발전의 역사 시작부터 함께 해온 IRI의 노력과 업적,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프로그램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부분적으로만 접했던 IRI 활동에 관한 편견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였다. 

몽골이 막 사회적 전환기에 들어섰을 때, IRI는 개혁을 이끈 민주적 정치인과 아직은 관료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던 반대파 정치인들도 포함하여 그들의 협상 능력을 향상하는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또한, 시민들의 선거참여를 장려하는 일도 도왔다. 최근에는 몽골 정부와 함께 몽골의 성공적인 전환기 정착 경험, 인권, 민주주의 증진 경험을 아시아 지역의 나라들과 공유하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한편, 월드 러닝과 함께 몽골의 젊은 리더들이 부탄, 미얀마, 키르키스스탄 같은 나라들에 젊은 리더들과 서로 경험을 공유하는 프로그램, 정부의 부패 축소를 위해 시민사회, 정부, 시민사회 대표들 간 협력을 도모하는 일, 캐나다 정부와 협력해 여성의 사회적 활동 참여와 리더십을 장려하는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IRI는 개발원 조 기관, 대사관, 정부 기관 등 다양한 기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에서 북한 인권운동 분야에서만 협소하게 알려진 IRI 활동들과 대조적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사회의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IRI의 프로그램 동문과의 만남과 협력 기관 방문을 통해 몽골의 경험을 깊이 알게 됐다. 

민주주를 발전시키는 리더들의 모임 Leader Advancing Democracy Alliance(LEAD) 동문과 만남에서 몽골의 소득 격차 문제에 대해 듣고 그들이 직접 하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소규모 창업 지원 사업들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또한, 정보 접근과 해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인터넷 신문 대표와도 만났다. 참가자들은 개혁 초기에 정보를 많이 알고 있던 사람들은 많은 부를 쌓았다며, 지금도 정보 격차가 소득 격차를 벌어지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세 동문 모두 외국에서 유학 경험 없이 영어를 공부해 유창하게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세 번째로 찾은 곳은 몽골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출판 전문회사였다. 설립인 중 한 사람인 쎈도어(Mr. B. Tsenddoo) 씨는 저널리스트로 몽골의 전환기를 관찰했다. 이 회사는 과학과 근대역사, 역사책을 주로 편찬하는데, 그 이유는 몽골에서는 여전히 소위 교육받은 사람들도 결정할 때 미신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개방 이후 사람들이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여전히 일부 사람들이 과거 역사를 조작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과거 사회주의 정부시기 가축 소유권을 국유화할 때 유목민들이 자원해서 가축을 국가로 반납했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역사책이 학교들에 보급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가축 소유의 국유화로 도시로 올라온 유목민들이 생활 수준이 높아져, 아직도 기존세대 중에는 그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그는 사회발전에서 새로운 기술은 받아들이기 쉽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어렵다는 교훈도 들려줬다. 1999년에 리포터로 한 정치인과 함께 시골의 어르신들을 만났던 때를 들려줬다. 사람들은 민주주의 연합을 해체하라고 요구했지만, 그 정치인은 그들은 우리의 자녀들이고 그들과 협력하든지 혹은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민주주의운동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에도 국가 최고지도자는 군대를 사용해 시위군중을 진압하는 데 대해서는 반대를 했다고 한다.

기관 방문 사이사이에 식사를 함께하면서 국책연구기관, 유엔, 언론사, 국제개발지원단체, 정치학연구소 등 다양한 기관 관계자들의 만남을 통해 개인적인 견해와 경험도 들을 수 있었다.    

1991년, 몽골에 민주화가 막 시작하자마자 IRI는 어떻게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이번 교환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제일 먼저 가진 질문 중 하나였다. 더 정확히 말해, 몽골과 미국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점심시간에 국책연구 기관인 몽골국가안보 회의 전략연구소 부소장과의 만남을 통해 몽골의 역사적 맥락을 알게 됐다. 중국의 지배를 받다 러시아로 이어진 차별로부터 몽골은 자유와 평등을 원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미국을 선택했다고 한다. 미국의 대학교 교수, 경제전문가들로부터 시장경제 관련 조언을 받고 과감히 실행했다고 한다. 사실 국가든 개인이든 간에 잘 모르거나 준비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 두렵고 혼란스러운 게 사실인데, 그런 면에서 몽골의 개혁 리더들을 북한의 관료들도 배웠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봤다. 

점심을 먹으면서 몽골 내 국내외 기관들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IRI 프로그램의 젊은 세 명의 동문을 만났다. 유엔디피에서 일하는 동문은 대학교에서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한 정치 정당이 등록을 위한 성비율 때문에 우연히 제안을 받아 22살에 당 멤버로 구역 선거 캠페인에 정식 참가했고 한다. 다른 동문은 한국에서 석사 공부도 하고 지금은 아시아 재단의 여성 창업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고, 다른 한 동문은 몽골 티브이라는 민영언론사에서 뉴스룸을 총책임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정치아카데미 국장도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젊은 세대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타파하기 위한 교육, 시민-활동가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정부 관계자들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아직도 국가는 아버지로서 무언가를 제공해야 한다는 시민 인식을 지적하면서 시민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중년의 연구자는 연구 대상 지역으로 북한에 큰 관심이 있는 듯했다. 이미 세 번 정도 방문한 평양에 관한 인상도 밝혔다. 그는 북한은 분명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시가 많아지고 색깔도 다양해졌으며 호텔의 서빙 직원들의 태도는 처음엔 부끄러워하더니 지금은 더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면서 그의 기억을 공유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리더들이어서 그런지 몽골의 민주주의 희망은 밝게 느껴졌다. 아직은 더 성숙해져야 할 숙제를 안고 있지만 IRI과 같은 조력자가 있어 민주주의 발전은 계속될 거라는 가능성이 느껴졌다. 또한 IRI의 활약과 성과들이 북한에서도 펼쳐질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하리라 다짐했다.